영화 체인소맨:레제편, 너와 함께하는 세상은 (스포일러 주의)
October 25, 2025
이번 추석 기간에 시간이 많이 나서 애니메이션을 하나 골라 정주행을 했다. 마침 극장가에 개봉을 한 ⌜체인소맨:레제편⌟을 보기 위해 TVA 로 나와있는 편들을 보기로 했다. 체인소맨은 1970년 대 일본을 배경으로 악마들이 존재해 인간이 위협받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세계관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진 않지만, 이미 이런 설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별로 신경 안써도 즐길 수 있다.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와 호기심가게 만드는 복선들, 그리고 시원시원한 액션이 특징이다.
⌜체인소맨:레제편⌟의 리뷰를 작성하다가 문득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중 레제가 한 대사들이 자꾸 머리에서 맴돌았다. 리뷰를 탈고하기 전, 감흥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어졌다. 얼마 안 가 영화관을 이 영화 때문에 한 번 더 찾게 되었다.
줄거리
주인공 17 살 덴지는 작중 연민이 들게 하는 사연을 갖고 있다. 등장부터 이미 한 쪽 눈이 없고, 신장도 하나 없는 것으로 나온다. 보호자가 없고, 심지어 갚아야 될 빚도 있어서 생긴 문제다. 그리고 작중 인간으로서는 죽음을 맞이한다.
덴지가 데리고 다니는 악마 포치타와 심장을 공유하는 형태로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공안의 데블헌터인 마키마가 덴지를 발견하고 데블헌터로 살아갈 것을 협박같은 권유를 한다.
영화는 마키마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이 데이트의 실체였지만, 그 과정에서 덴지는 본인이 일반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낀다. 본인이 마음이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에 빠지지만, 마키마가 심장소리를 들으려 가슴에 귀를 댄 순간 마음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데블헌터의 버디인 빔과 순찰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공중전화 박스로 비를 피하게 된다. 거기서 이번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레제를 만난다.
덴제는 마키마와의 관계 때문에 딜레마를 느끼면서도 살갑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레제에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카페에 자연스럽게 출근을 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데블헌터 일을 하고 있는 덴지에게 레제는 연민을 느낀다. 결국 레제는 덴지에게 도망가서 살자고 하지만, 덴지는 현재 자신의 상태의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이후 레제가 돌변하고 덴지와 일행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하게 된다.
리뷰
첫만남
본인은 사실 처음 두 주인공이 만나는 부분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2차 관람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레제가 어디서부터 가짜이고 어디서부터 진심이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국 "총의 악마"의 동료로서, 위협이 되는 체인소의 심장을 손에 넣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헤어질 때도, 레제는 가짜 웃음과 가짜 사랑이었다고 애써 얘기한다.
덴지와 레제의 첫만남은 작은 전화부스 안에서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 레제는 덴지를 보고 별안간 자신의 죽은 강아지를 닮았다고 웃다가 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웃는 것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덴지는 자기가 개 닮았다는 거냐고 비아냥거리지만, 딱히 악감정은 없었고 오히려 꽃을 꺼내서 레지에게 건내준다. 처음으로 레지의 눈과 함께 얼굴 전체가 드러나는 것은 딱 이 장면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별 의미없이 지나가는 장면들이었지만, 다시 볼 때는 레제의 은근한 감정선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OST가 정말 좋다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수영장에서 레제가 덴지에게 수영을 가루쳐주는 장면이다. 덴지의 하나마나한 딜레마가 일단 유머로 크게 작용했다. 학교 수영장과 두 어린 남녀 주인공. 일본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청춘의 클리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교하고는 오히려 거리가 먼 인물이다. 덕분에 아무도 없는 밤, 학교에 몰래 들어가 탐방하는 플롯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장면을 완성해낸 것은 "In the pool"이라는 삽입곡이라고 하고 싶다. 달빛이 비치는 수영장에서 노는 두 주인공을 아름답게 감싸면서도, 왠지 모르게 긴장돼고 벌써 아련한 피아노곡이다. 이 피아노곡 자체가 나한테는 복선처럼 다가왔다. 덴지가 행복해지면 좋겠지만, 작가는 쉽게 허락해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오프닝과 엔딩에서 사용된 "Iris Out"과 "Jane Doe"는 일본의 유명한 가수 요네즈 켄시가 작업하고 노래했다. "Iris Out" 같은 경우는 오프닝에 쓰여졌지만, 노래 자체는 마키마와 레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덴지를 잘 표현했다. "Jane Doe"는 크레딧이 끝나는 때까지 결말의 여운을 마음 속 깊이 인장을 박아버리는 노래다.
도시는 좋은 곳이니?
이번 영화에서는 도시쥐와 시골쥐라는 핵심 주제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도시쥐는 다양한 즐길거리,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반면에 인간이나 다른 위협에 자주 직면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반대로 시골쥐는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사는 반면, 도시에서처럼 흥미로운 요소는 없다.
이번 편에서는 천사의 악마가 아키의 짝으로 여러 번 모습을 비춘다. 천사의 악마는 마키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도시에 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천사는 살려고 애쓸 필요 없이 빨리 죽는 아키가 부럽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악마와 싸우면서 불안하게 삶을 연명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싶어했다.
레제도 덴지에게 마키마나 다른 악마들이 찾지 못하는 시골로 도망치자고 제안했다. 덴지가 학교를 다니는 정상적인 일상을 찾아주고 싶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덴지는 과거의 아사 직전까지 굶어 죽을 뻔했던 빈곤생활에 비교했을 때 현재의 생활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레제와 크나큰 사랑싸움을 하고 난 이후, 레제와 같이 시골에 내려가고자 결심한다. 불과 며칠 만나지도 못한 레제와 마키마 사이에서, 덴지가 너무 갈대같이 마음을 변경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감정선 변화의 구실이 확실하게 납득은 안되지만, 두 사람의 진심은 확인 가능했다. 오히려 이 영화가 비극이어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방 안에 잔뜩 채운 짐과 돈봉투 가득 담은 돈을 가지고 약속한 카페에 가는 모습에서 덴지의 진심이 확인 가능하다. 도망가기 위한 신칸센 열차를 보내고 덴지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향하는 데서 레제의 진심이 확인 가능하다.
덴지군, 사실은. 나도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
마무리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겨주는 것 같다. 본인도 여태 빠져나오지 못해 레제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고있다.
레제의 진심은 죽음으로 확인되었다. 죽음이어서 더 와닿는 것 같다. 죽음을 무릎쓰면서까지 덴지가 있는 카페로 달려오는 모습은 진심이 아닐 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카페까지 가 닿지 못하고, 창에 맞고 피를 흘리는 레제를 보며 관객들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덴지도 레제의 진심을 알 도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배를 크게 얻어맏고 사라지는 레제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을거다.
이전에도 이 만화의 원작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다른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를 보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 영화나 지금 다루고 있는 영화나 독창적인 소재와 남다른 스토리 구성으로 재밌게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은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서 시간을 할애해도 아깝지 않은 만화들인 것 같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다른 만화를 찾아서 읽어볼 기회를 가져보려고 한다.
